새내기 때 종교에 낚여 아싸가 된 슬픈 기억. 장어의 하루

시간이 지나가면 몰랐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지요. 오늘 문득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새내기때의 기억이 

새록새록 났습니다. 그리고 나서 다시 떠올려보니 제가 새내기때 거하게 낚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 

새내기때 자느라 오리엔테이션도 안 갔던 저는 학교 생활에 대해서 진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. 주변에 대학생이

한 명도 없고, 어리둥절 에헷 하는 상태로 학교에 입학했지요. 그리고 어느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. 

"안녕, 니가 장어니? 나 모르지? 나 너랑 같은 고등학교 졸업한 선배인데, 후배가 입학했다고 해서 너무너무 

반가워서 연락했어!!" 

고등학교 선배라고는 동아리 선배들밖에 몰랐는데, 그래도 같은 학교 졸업생이라고 연락해주다니 엄청 반갑

더라구요.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다던가.. 뭔가 말을 했는데 그건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. 아무튼 밥 사주겠다고

하는 선배의 말에 참 설렜습니다. 와 이런 게 대학 생활이구나! 선배가 밥도 사주고! 

나가서 선배가 사주는 밥을 먹고, 선배가 해주는 학교 안내를 듣고. 당시에는 너무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. 

가르쳐준게 학교 학생문화관 위치랑 식당 위치밖에 없었지만. 새내기가 뭘 알았겠습니까. 

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공대인데 공대 위치나 좀 가르쳐주지(...) 

엄청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해서 나갔는데 학식사줬습니다. 학식. 당시엔 그냥 선배는 이게 맛있나보다했죠. 


그리고! 아직 학교 시간표를 안 짜지 않았냐고 하면서 자기가 짜주겠다고 하는겁니다. 저는 이 때 정말로 

감동했어요. 이게 선후배의 정이로구나. 어헝헝 개뿔. 

문과생 선배가 공대 시간표를 열심히 짜준 덕분에 전공기초 몇 개랑 필수 교양이 치덕치덕 발린 시간표를 

받았습니다. 공강도 이상하게 들어있고. 제가 들어보고 싶어했던 과목들은 자기가 들어봤는데 다 별로였다

면서 빼버리더라구요. 그 결과는.. 우울했습니다. 같은 과 애들이랑 듣는게 하나밖에 없었어요. 대학영어

같은 거야 어차피 새내기들 신청하는 거니까 아는 얼굴들이 있었지만, 다른 과목은 그냥 전멸. 

대학 들어와서 관심있는 새로운 과목도 들어보고 그래야하는데 재미있고 관심있는 건 하나도 안 듣고,

같은 과 애들이랑 수업도 달라 친해질 기회도 별로 없고. 학교가 참 지루지루하더라구요. 


그리고 공강 시간마다 선배한테 연락이 옵니다. 밥 사주겠다고! 아니면 밥 같이 먹자고! 그 땐 와 이 선배가 

어떻게 내가 한가한 걸 알고 연락했나 했죠..으힝힝..... 심지어 손엽서도 써줬어요.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,

같이 친하게 지내자고. 그러면서 자기 친구들도 많이 소개를 시켜주더라구요. 학교가 외롭지 않냐고, 원래

이 학교가 이렇게 외로워서 자기는 정을 잘 못 붙이고 동아리 친구들이랑 잘 논다고 하더군요. 그리고 자기

동아리를 같이 다니자면서 데려갔는데 그게 기독교 동아리였습니다. 다같이 모여서 기도도 하고 이야기도 

하고 밥도 먹고. 한 달쯤 그렇게 공강에 끌려다니다가 취향에 안 맞는다고,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. 

둥그렇게 앉아서 제 손잡고 방언을 하는데 엄청 무섭더라구요. 그리고 종교 자체가 저랑 별로 맞지도 않고.

처음에도 종교 동아리라길래 제가 좀 부담스러워 했거든요.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저한테 전도를 하려는 

애들이 꾸준히 있었는데 전 별로였다고 했더니,

"그게 정말 살아있는 증거다. 하나님이 너를 그 때부터 꾸준히 부르신 건데 몰랐구나!"

라고 하더군요. 와 그럴싸하다! 이렇게 생각한 과거의 나. 반성하고 있니? 

그렇게 선배를 피하고, 선배의 전화도 피하고. 학교는 점점 재미없어지고. 1학년 1학기는 성적이 아주..


뭐 어찌되었건 공부를 안한건, 게임하느라 학교를 땡땡이 친 건 저니까 누구 핑계를 대겠습니까마는. 

지금 생각해보니 시간표 짜줄 때부터 뭔가 잘못되어 있긴 했습니다. 선배가 분명 2학년인가 3학년에 문과

인데 자기 시간표를 보면서 제 시간표를 짜주더라구요. 뭐라고 했더라, 내가 이번 학기 시간표를 되게 예쁘게

짰는데 너도 비슷하게 짜줄게 였던 것 같네요. 한마디로 자기랑 공강이 같게 시간표를 짜준거죠. 그리고 같은

과랑 안 만나니 당연히 아싸가 되어가고. 그 선배가 학교 욕을 꾸준히 계속 하면서 학교 다니는 애들 다 겉멋

들어서 사람을 껍데기처럼 대한다고 같이 놀지 말라고 그랬어요. 그리고 학교 동아리들 비밀이야기 해준다면서 

다른 동아리들이 전부 사이비 종교 동아리라고 했습니다! 와.. 저는 그걸 철썩같이 믿었다니까요ㅠ ㅠ..


근데 무서운 게 뭐냐면, 제가 이 때 이딴 식으로 낚였다는 걸 오늘! 졸업하고 1년도 더 된 오늘! 알았어요.. 

얼마나 바보인 겁니까. 화가 났다가 우울했다가 웃겼다가 슬펐다가 멍때리다가 온갖 감정이 다 드네요. 

그냥 친했는데 전도하려고 해서 만나기 싫어진 선배라고 기억하고 있었고, 잘해줬는데 조금 미안하다고도

생각했는데 말이죠. 지금보니 완전 낚였네요. 사기당했어!! 어허허허허허허헣 나중에 좋은 동아리에 들어가

난 원래 학교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샌 너무 좋다 이런 동아리가 다 있었나 했어요. 근데 전공수업을 들어보니

같은 과 애들도 다 너무 착하고 성실했어요. 그래서 학교가 원래 이렇게 좋은 사람이 많았나 의아해하면서 

졸업했는데, 생각해보니 새내기때 그 선배가 계속 해준 말 때문에 학교에 대한 적개심? 경멸감? 같은게 있었던 

겁니다. 으으으으..... 다른 사람이 씌워준 필터로 계속 생각없이 보고 있었던거죠. 그래도 후반에 그런 것 따위

다 날려줄만한 사람들이 가득가득 곁에 있어서 졸업 직전 헌내기때는 꽤 행복하게 학교에 다녔습니다. 

고마운 일이죠. 사실 원래 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못 보고 있었던 거겠죠?

저같이 낚이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부끄러운 과거를 써봤습니다. 10월이라 새내기는 없겠지만, 새내기 

여러분 종교 조심하세요. 잘못하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종교입니다. 왜 사람을 아싸를 만들어어어엉...


그리고 선배. 이제 이름도 동아리명도 기억나지 않네요. 선배가 줬던 엽서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발견하면 

꼭 언제 쓸지 모를 증거사진을 한 장 찍고서 불태워버리겠습니다. 그리고 제 눈에 띄면 선배도 불태워버리겠습

니다 (^ㅁ^)!! 하하하!! 하하하하!!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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